글쓰기는 두 가지의 효용이 있다.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말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명료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의 외적 효용과 글을 쓰며 자신의 감정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어떤 말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지를 숙고하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적 효용이 그것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글의 주인이 선택한 최선의 단어로 구성된 최상의 자기표현을 읽는 것이다. 내가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세계를 훔쳐보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글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의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매개는 어떠한 매개보다 가장 냉철하게, 또 정확하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가장 조악한 수단이다.

글은 ‘어떤 것’에 대한 저자의 ‘최선의 단어’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최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어떤 것’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가 불안함, 짜증, 분노, 초조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불쾌함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데아를 좇는 현상세계 속 개별행위의 덩어리일 뿐이지만 이를 초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보편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자가 저자의 언어, 즉 저자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쓰기를 조금 더 저자의 측면에서 들여다보자. 글쓰기는 현실 감각을 일깨워 준다. 우리의 사고는 연속적이고 점진적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정도를 지나친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사념이 된다. 글쓰기는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글자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 작업에는 하고 싶은 말들, 전하고 싶은 의미를 추려내는 과정이 필수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한 이해를 스스로 끌어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성찰의 계기이자 발전의 걸음이며 본질에 대한 추구라는 숭고한 행위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격 한 동조를 얻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격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내 세계를 한번 훔쳐봤으니, 당신도 당신의 세계를 조악하게나마 보여줬으면.

한재원 | 국어국문·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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