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에 / 장민기 명지전문대 문창 2

 

0.

경은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나는 철제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영원한 공범이 되었다.

1.

아빠를 만나야겠어.

미역 줄기를 우득우득 씹다 말고 경은 나를 올려다봤다. 밥을 먹고 있는데도 병실에선 소독약 냄새만 났다. 창 밖에는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병원 뒤뜰에서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들이 군데군데 빛나고 있었다.

만나고 나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볼게.

경은 무서운 걸 본 사람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했다. 하지만 나도 알 수 없었다, 집을 나온 지는 십 년이 넘었으니까. 다시 아빠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용서 못해.

왜?

나를 망쳐놓았으니까.

매번 그런 식이었다. 경이 겁을 먹을 만도 했다.

죽는 사람은 없을 거야.

위로랍시고 그런 말을 하자 경은 못 참겠다는 듯이 눈앞에 있던 내 팔뚝을 잡고 힘껏 깨물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맞은편과 옆의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욕지기를 뱉었다. 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러자 경도 따라서 웃었다.

경을 처음 본 건 보건소에서였다. 수면제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바람에 상담 프로그램을 받던 중이었고, 팔 주짜리 과정 중 이 주 차였다. 경은 녹슨 대기의자에 앉아 로비 기둥에 붙은 작은 티브이 화면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의 주변으로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거나 내복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쾡한 눈으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경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정수리께가 하얗게 세 있었고 헐렁한 몸빼 바지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노숙인 쉼터가 여기 뒤편에 붙어 있어요.

간호사는 로비에서 경을 보고 있던 내게 그렇게 말했다.

쉼터요?

여성 노숙인 쉼터라고 좀 나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참나.

간호사는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하다, 놀라 얼굴을 붉히며 빠른 걸음으로 나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상담사인지 의사인지 모를 남자는 매일 감정을 기록하라고 했다.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이 선생님이 과도하게 우울감에 빠지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생각하게 되는 경향성을 붙잡아 줄 겁니다.

나는 남자가 준 노트에 감정을 기록했다. 우울합니다. 신납니다. 슬픕니다. 흥분됩니다. 죽고 싶습니다. 왜? 왜냐면 우울하고 신나고 슬퍼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울었어요.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종일 울었습니다. 옆 방 사람이 조용이 하라고 벽을 몇 번 쳤습니다.

 

 

매주 남자는 내게, 왜 그렇게 느꼈나요? 하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괜찮다고 했다. 내가 뭘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상담은 무의미했지만, 나는 경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경은 매번 센터를 갈 때마다 로비에 있었다. 경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교체되었지만, 오직 경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다 경이 없는 날이면 나는 경을 찾아 센터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로비에서 휴게실로, 휴게실에서 후문 자판기로, 자판기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주차장에 없으면 서늘하고 덜 마른 페인트 냄새가 나는 그곳에서, 경은 어디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 로비로 돌아갔다. 그러면 경이 거기 있었다. 한참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로비 기둥에 달린 작은 티브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이 반짝거리면 경의 눈도 반짝였고, 화면이 어두워지면 경의 눈도 어두워졌다. 나는 로비에 앉아 있는 몇몇의 사람들에 섞여 경과 함께 티브이를 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경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날에 우리는 야구를 보고 있었다. 경기는 12대0으로 일방적이었고, 9회 말 투아웃이었다. 일찍이 다른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고 로비에는 우리 둘만 있었다. 그 때, 티브이에서 깡! 하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캐스터가 무미건조한 말투로 멀리, 멀리까지 나아갑니다, 하고 중계를 이어갔다.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오.

오.

우리는 동시에 짧고 조용하게 감탄사를 뱉었다. 경의 목소리를 들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경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점수판의 숫자는 12대0에서 12대1로 바뀌었다.

야구, 좋아해요?

타석으로 다음 타자가 들어오는 걸 지켜보며 내가 말했다. 경은 내 쪽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멈추고는 뜸을 들였다. 그 사이 티브이에서는 다시 깡, 하고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가 점점 각도를 위로 틀고 있었다. 하얀 점 같은 공은 계속 높이 솟아올랐다. 공은 경기장에서 경기장 지붕으로, 지붕에서 다시 까만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우리 둘은 잠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높이 솟아올랐던 공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좌익수가 아주 쉽게 공을 받아냈다.

필드에 있던 선수들이 웃으며 벤치로 들어가는 모습과 함께 최종 점수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끝난 거예요?

경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그런가 봐요.

대답하자 경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도 경을 바라봤다. 경의 얼굴을 보면서 내 표정이 그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

무서웠어, 나를 쳐다보는 네 눈빛이. 그래서 괜히 네 빨간 볼이나 하얗게 침이 말라붙은 입술, 꿈틀대는 작고 붉은 손가락 같은 것들만 보고 있었지. 너는 놀라울 만큼 작았다. 버스에 너를 데리고 탔다가 실수로 놓고 내릴 수도 있겠다 싶었어. 이따금 몸을 뒤척이다 울음을 짜내기도 하면서 너는, 아주 간신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손길이 없으면 곧장 죽어버릴 것 같았어. 간호사는 너를 보고만 있는 내게 직접 너를 안겨줬다. 따뜻하더구나, 붉은 네 몸이. 색깔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뜨겁게 데워져 있는 것 같았어. 작은 태양 같았지. 나는 신기했다. 네 뜨거운 몸이, 쉴 새 없이 꿈틀대는 네 두 다리가, 내 손가락을 거세게 붙잡는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그러니까

네가.


옛날에 살던 데 가볼 거야.

어딘지는 기억해?

당연하지.

진짜로 갈 거야?

응.

그렇게 잘라 말한 후,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만나야 한다는 일종의 확신. 나는 아빠를 만나야 한다. 그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끝내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직 무서운 게 많아. 애를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고.

경은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복도 쪽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래 가네. 커튼이 쳐진 옆 베드에서 중얼거렸다. 몇 시간째야, 저러다 숨넘어가겠다. 맞은편도 거들었다. 경은 비명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경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경의 기름진 머리칼이 뭉쳐진 채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곧 퇴원이네.

그러게.

괜찮을까?

경이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퇴원을 하면 내 집으로 가야 한다. 좁고 캄캄한 그 지하로. 경의 표정은 다시 굳어 있었다. 새벽에 악몽에 깬 아이 같았다. 창밖은 여전히 환했다.

잘 모르겠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나도 무서웠으니까. 우리 둘의 대화는 일종의 독백이었다.

2.

엄마가 죽은 후로 아빠는 매일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다가 흐느끼기도 하고, 불 꺼진 침대에 누워 나를 다독여주다가 별안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목덜미에 떨어진 미지근한 눈물들은 몸을 타고 흐르며 나를 간지럽혔다. 나는 아빠 몸이 눈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가 아닌 투명한 눈물이 가득 들어차서 가장 꼭대기에서 물이 새는 것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빠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면 항상 변기나 세면대에는 피가 씻겨 내려간 흔적이 있었다. 아빠 팔뚝과 허벅지 안쪽에 반창고가 나란히 붙여지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처음 때린 날을 기억한다. 같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다. 개그맨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자 나와 아빠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 앞에서 방금 개그맨이 지었던 우스꽝스런 표정을 따라했다. 아빠는 배를 잡고 쓰러졌다. 소리를 지르며 웃다가, 웃다가, 잠깐 소리를 지르고. 다시 웃다가, 웃으면서 울다가 결국에는 엉엉 울면서

왜 웃어. 뭐가, 뭐가 웃겨.

소리를 지르면서 내 왼쪽 어깨를 세게 붙잡고 등과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웃지 마, 제발!

나는 좁은 창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다음날이 될 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아빠는 문을 두드리며 밤새 애원했다. 자기를 용서하라고. 나는 먼지가 가득한 방에 쪼그려 앉아 밤을 보냈다.

다음날이 돼서 문을 열고 나가자, 아빠는 내 몸을 안고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빠 몸에 뼈가 없는 것 같았다. 내 몸을 붙잡고 흐물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큰 머리를 꼭 안아줬다.

하지만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아빠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대상은 내가 될 수도 있고, 아빠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다 나를 때리게 되면 아빠는 엉엉 울면서 내게 용서를 구했다. 너무 울어서 아빠 눈알이 항상 빨갰다.

맞는 날에는 창고 방에 들어갔다. 좁은 창고 방에서 잠에 들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다.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저 검고 미끄러운 것들을 제발 치워주세요, 문을 열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만 염불처럼 계속됐다.

나는 혼자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들이 지겨워졌다. 아빠의 슬픔도, 용서를 구하는 목소리도, 나를 괴롭히는 시커먼 놈도.

가위에 눌리면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부릅떴다. 날 괴롭히는 그 새끼를 패버리려고.

20살이 되고, 나는 마침내 가위에서 풀려났다. 꽉 쥔 주먹으로 좁은 방 안에 있는 행거를, 박스를, 유리창을, 가족사진을, 깨고 부수고 밀고 짓밟았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아빠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아빠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를 지나쳐 문 밖으로 나갔다.

3.

재밌는 이야기네.

경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말했다. 후문 자판기에서였다.

끔찍하지 않아?

자기 얘기를 끔찍하다고 하는 거 안 부끄러워?

듣고 보니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경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녀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오백 원짜리에 실을 꿰어 자판기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신기하게 잔액이 계속 늘어났다.

여기선 너무 흔한 일이야.

쉼터에서?

아니 그냥 여기서. 그것보다 뭐 마실래?

파워에이드.

일본에는 자판기에서 술을 판대. 좋은 나라야.

나는 경의 대답을 잠시간 곱씹었다. 여기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그 사이에 경은 파워에이드와 레쓰비를 하나씩 뽑은 뒤 잔돈까지 챙겼다.

이 짓도 많이 하면 걸려. 조심해야지.

경은 자신이 보건소 뒤편 노숙인 쉼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안에 있으면 정신병 걸릴 것 같아. 그래서 종일 티브이나 보고 있는 거야. 저 좁은 데 몇 명이 사는 줄 알아? 누워 있으면 모르는 척 손가락 발가락을 밟고 지나가. 꺼지라고.

나는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그녀는 보육원에서 자랐고, 그녀에게 이런 삶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경은 위로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근데 너는 어디 살아?

경이 물었다.

저기 원룸에서.

넓어?

좁지. 전화를 하는 소리가 다 들려. 불법으로 원룸을 둘로 쪼개 놓은 곳이거든. 전기세도 옆집이랑 반 나눠 내. 새벽에 일 나가는데, 알람이 울리면 양쪽 방에서 주먹으로 벽을 쳐대.

둘 다 웃기게 산다, 그치?

뭐가 웃긴지 모르겠는데 경은 소리까지 내면서 웃었다.

경이 웃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엄청 큰 아파트를 만들고 있어. 서울에서 제일 큰 단지가 될 거래.

사실 건축은 이미 다 끝난 상황이었고, 내가 하는 일은 자잘한 배선 공사나 현관 키를 다는 일 정도였지만 경에게 뭔가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내 일이 뿌듯했다. 그 거대하고 멋진 곳을 만드는 데 내가 일조했다는 사실이. 경은 내가 과장해서 하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듣고 칭찬해줬다.

오늘은 40세대가 넘는 건물에 현관 키를 다 달았어. 이제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 거기 비밀번호는 나만 알거든.

나는 내가 잠가놓고 나온 그 건물을 떠올리며 말했다.

거긴 좋은 곳이야?

그럼, 거기는 40평이 넘어. 그러니까 센터 로비가 한 네 개는 붙어 있어야 그 집 하나만한 거지.

그렇게 넓어?

맨 꼭대기 층은 더 넓어. 거긴 두 집을 하나로 합쳐놓았거든. 백 평이 넘어.

백 평.

그래, 백 평. 센터만 할 걸? 거기가 텅 비어 있는 거야.

완전히?

응, 완전히 텅 비었어. 아직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언제부터 사람들이 사는데?

그건 모르겠어. 아무튼 지금은 아무도 안살아.

그런데서 살고 싶다.

경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다음에 너를 데려갈게.

그러고 나서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만 반짝였다. 허공을 올려다보는 경의 눈 안에서 불빛이 작게 빛났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따금 눈을 마주치고 잠시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치고, 전등을, 하늘을, 쓰레기 가득한 깨진 아스팔트를 바라보았다. 나는 경이 좋았다. 경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 이곳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니? 매일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우는 일이 힘들지는 않니? 궁금한 게 참 많구나. 네가 날 보고 웃는 건줄 알았는데, 그건 배냇짓이라고, 웃는 게 아니라고 그러더라. 아무리 봐도 날 보고 웃는 것만 같은데. 그냥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라고. 네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알 수 없는 거라고.

그래도 나는 너를 보면 웃음이 난단다. 남이 웃으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것처럼. 너를 만나러 갈 때면 두 번을 씻어. 너는 냄새에 제일 민감하다고 그러더라. 네게 내가 좋아하는 냄새들을 맡게 해주고 싶어. 방금 자란 새싹에서 나는 연한 아몬드 냄새, 빗소리에 창문을 열면 끼쳐오는 축축하고 싱그러운 비 냄새, 여름이면 서늘한 지하주차장에서 풍기는 덜 마른 페인트 냄새, 타오르는 모닥불에서 풍겨오는 재의 냄새, 그런 것들.

조금만 더 자라면 데려갈게.

 

 

아빠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빠를 만나는 순간을 머릿속에서 예행으로 연습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반가워. 아니지. ………안녕하세요. 안녕, 아빠. 살아는 있었네. 어떻게 지냈어?

하지만 적당한 인사말을 찾지는 못했고,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4번 출구에서 윗쪽 길로 쭉 올라가면…….

중얼거리면서 4번 출구를 찾아 나간 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동네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기껏해야 이 층, 삼 층 정도였던 상가지대에는 십 층 넘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다행히 큰길은 그대로 있었고, 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뭔가 익숙했다. 집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감았다. 문을 열고 그 집에 다시 들어가면, 아빠가 여전히 창고방 문 앞에 앉아 있을 것 같았다.

큰길의 끝은 갈림길이었다. 산 중턱으로 향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골목을 돌았다. 산 중턱에 가려져 있던 옛날 집이 있었던 곳을 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서울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건설사가 각 건물 별로 달랐다. 총괄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건물을 철저하게 감독 하지는 못했다.

내가 소속돼있던 건설사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 고용인원이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턱없이 적었고,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각각 건물 하나를 맡아 간단한 배선작업이나 샷시 점검, 현관키 설치 등의 업무를 전부 해야 했다. 나는 803동을 배정 받았다.

나는 매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한 층씩 내려오며 매뉴얼에 따라 전등을, 빌트인 가스레인지를, 도시가스를, 고급 실크 벽지를 점검했다. 건물 하나를 전부 점검하고 다듬고, 최종적으로 번호키를 달아 잠그면서 나는 마치 그 건물 전체가 내 것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을 그곳에 데려갔을 때 경은 정말 기뻐했다, 우리가 그 집에 살게 되기라도 했다는 듯이.

 

 

단지는 아주 컸고 건물들은 먼 쪽까지 듬성듬성, 높이 솟아 있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조경수에는 나뭇잎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경을 데리고 803동으로 갔다.

벌써 되게 좋지?

응.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비로 진입하자 덜 마른 페인트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황금색으로 써진 803이라는 글자와 은빛 엘리베이터가 센서등 불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와!

경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들떠 보였다. 경은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이도록 함박웃음을 지으며 와, 우와, 같은 감탄사를 계속 뱉었다. 나는 경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여기는 진짜 넓어, 정말.

 

문이 열리자 짧고 넓은 복도 끝에 현관문이 보였다. 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마른 본드에서 나는 인공적인 향이 바람과 함께 우리 쪽으로 끼쳐들었다. 나는 경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테라스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불만 안 켜면 아무도 우리가 여기 있는 줄 모를 거야.

진짜 넓다.

경은 집안 곳곳을 방방 뛰어다니다가, 테라스 난간에 매달려 끝이 안 보이는 어둠을 내려다보며 깔깔댔다.

여름이 되면 여기서 물놀이 하자.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경은 방 안으로 들어가 한 쪽 끝에서 한 쪽 끝까지 질주했다. 나는 그런 경을 따라 달리거나 걷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까르르 웃었다.

만약 여기가 내 집이라면, 난 여기 침대를 놓을래.

경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눕는 시늉으로 안방 바닥에 누웠다. 오른편의 창문에서 비치는 빛이 경의 얼굴을 반만 비추고 있었다. 경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달빛이 비치자 칙칙한 경의 살이 군데군데 하얗게 빛났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주 밤을 보냈다. 보일러도 안 되는 완전한 냉골에서 우리는, 온 몸을 덜덜 떨면서 서로를 붙들고 밤새 바닥을 뒹굴었다.

아빠와 내가 살던 집은 아파트가 되어 있었다. 산 중턱에서부터 먼 쪽 시내로 뻗어 있는 거대한 단지. 서울의 가장 큰 아파트 단지가 될 거라던 그곳이었다. 먼 쪽에 익숙한 803동이 보였다. 옛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가득했다. 단지 놀이터에서 신난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이 내가 있는 쪽까지 와 닿았다.

내 집은 어디쯤 있었지.

나는 높게 솟은 건물들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늠했다. 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의 상가건물 쯤 될까? 나는 잠깐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거대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건물들과 그 아래 대칭 맞춰 정렬된 구조물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 일 없지?

전부 바뀌었어, 여기가.

그렇겠지, 십 년도 더 됐다면서.

당연한 거야?

아버지는?

모르겠어. 아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나 퇴원 수속 밟고 있어, 바빠.

근데 기억나? 우리 갔던 그 아파트.

……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동사무소로 갔다.

제 아빠가 사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아버지 주소지를 모르시는 건가요?

창구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네.

가족관계증명서 떼시면 나올 거예요.

아빠는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곳에 살고 있었다.
 

*

텅 빈 아파트에 누워있을 때면 정말 그 집이 내 것처럼 느껴졌어. 커다란 창밖으로는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지. 아주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가던 구름들. 네게 그 광경을 보여주고 싶구나. 거긴 땅 보다 구름이 가까운 곳인데…….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단다. 네게 편지를 쓰고 있지. 여긴 캄캄하고 좁고 낮은 곳이야. 창문은 작고, 구름은 보이지 않고, 창밖을 스쳐가는 것들은 모두 빠르게, 이곳을 지나가버린단다.

너는 이곳으로 오게 될 거야. 그리고 여기서 자라게 되겠지. 밤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이곳에서.
 

계단에서 굴러볼까? 아파트는 높고, 계단은 길고 끝이 없잖아.

아니면 그냥, 집 한 군데 놓고 나올까? 그 집들은 전부 비어 있으니까. 거기 살 사람이 키워주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아파트단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하려고 했다기보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우리는 아파트 입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높고 텅 비어 있었던 거대한 건물은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고, 창문 너머로 언뜻 거실 내부가 비쳤다.

곧 크리스마스인가?

아파트 입구에 있는 조경수에 작은 체리전구가 가득 둘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앞에 아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가 봐.

입구를 지나쳐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멍하니 단지 안쪽을 바라봤다. 가까운 건물의 창문 너머로 거실이 보였다. 통창 너머에 높은 트리가 놓여 있었고, 가장 위쪽에는 금색별이 장식돼 있었다.

여기 살고 싶다.

자주 왔었잖아.

그때는 몰랐었는데.

맞아 좀.

좀 다르지.

아이가 까르르 까무러치는 소리. 사람들이 웃는 소리.

나와 저 사람들 사이에는, 아니, 우리와 저 사람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밤의 골목은 조금씩 죽어 있었다. 캄캄한 어둠을 헤쳐 도착한 곳은 반지하의 네 평짜리 방이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찾아갔다. 밤이었다. 캄캄한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도착한 곳은 이 층짜리 주택이었다. 주택에 딸린 샛길로 들어가자 뒷문으로 보이는 철문이 있었다. 까치발을 들자 안쪽이 그대로 보였다. 주택의 뒤편 반 지하에 창고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철문을 두드렸다. 창고에 불이 켜졌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늙은 남자였다. 동시에 그는 내 아빠이기도 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자는 문턱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굴 곳곳의 주름 사이로 방에서 새어나온 빛이 고여 음영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슬픈 건지, 화가 난건지, 기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잠긴 목으로 아, 아, 하다가 내 팔을 한쪽 손으로 잡았다. 아무런 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방 안으로 이끌었다.

방은 두 평정도 될까? 미닫이문 하나를 열면 보이는 이부자리와 티브이 하나가 가구의 전부였고, 그것만으로 방은 꽉 차있었다. 철문과 미닫이문 사이에는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주방 겸 현관이 있었다. 싱크대에는 레토르트 죽이 담겨 있던 용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네가 올 줄은…….

그는 허둥지둥 방 안의 이부자리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 자리를 만들며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들어가 좁은 방에 앉았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좁은 주방을 이리저리 돌다가, 이내 내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나는 너를 오래 기다렸다.

그는 소리를 내어 목을 다듬었다.

아주 오래 너를 기다렸어.

그러고 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티브이가 시끄러웠다. 스포츠뉴스 클로징이었다. 야구공이 담장을 넘어가고, 축구공이 골라인을 넘어가고, 농구공이 림을 넘어가고. 평균대에 선 사람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에서는 희미하게 뭔가 상해가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꽉 쥔 주먹 사이로 땀이 차고 있었다.

나한테…… 나한테 할 말은 없니?

그는 애원하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몸을 아주 가늘게 떨고 있었다.

저는 아빠가 될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아, 하고 감탄사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낸 후 맥이 풀린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구석에 놓인 박스들의 뚜껑을 열고, 이부자리를 뒤집고, 티브이가 놓인 다이의 서랍을 전부 빼내어 바닥으로 쏟고, 그러다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 주방 싱크대 아래까지 뒤졌다. 바퀴벌레 몇 마리가 재빠르게 흩어져 더 어두운 곳으로 사라졌다. 그는 녹슨 스패너 하나를 들고 내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다.

그는 스패너를 입 안에 넣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더 깊숙이 스패너를 집어넣었다. 녹슨 스패너를 타고 투명한 침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스패너 손잡이를 쥔 그의 손에서 핏기가 가셨다. 노란 장판에 투명한 침이 고여 빛났다.

축축하게 젖은 손. 꽉 쥔 주먹 안에서 손가락들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점점 물러지며 불완전해지고 있었다.

스패너의 손잡이가 허공을 갈랐다. 비명. 피와 함께 스패너 끝에 딸려 나온 것은 금니였다. 그는 뽑아낸 금니를 내 손 위에 올려주었다. 손금을 따라 핏물이 번졌다. 반짝이는 금니에서는 썩은 내가 났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입을 틀어막은 손 틈새로 붉은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몸이 흐물어져 내 쪽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작은 머리가 내 품 안을 파고들었다. 나는 팔을 벌려 작고 여린 그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그는 손을 휘휘 저었다.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의 얼굴과 손에 가득했다. 내 상의에도 그의 얼굴 모양으로 핏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곤 금니를 손으로 꼭 감싸 쥔 채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곤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

전부 알고 있다는 듯 깊고 캄캄한 검정.
 

돌아가는 길, 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버스 안이었다.

아기랑 둘이 집에 왔어.

나도 집에 가는 길이야.

아버지는 만났어?

응, 만났어.

이제 시작이네.

그렇지.

빠르게 스쳐가는 창 밖에서 빛이 지워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경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내가 신발을 벗고 문턱에 올라서자 경은 내게 아이를 안겨줬다.

까만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네 대답을 듣고 싶어. 이곳은 계속 거대해질 거야. 경과 내가 너를 갖게 된 그 거대하고 차가운 아파트들이 계속 새롭게 등장할 거야. 나는 언제든 그런 곳에 가서 예전처럼 일할 수 있단다. 주인 없는 집을 내 손으로 모두 잠그고, 그것들이 전부 내 것인 양 의기양양해하면서 몰래, 이번에는 경뿐만 아니라 너까지 데리고 거기 가볼 수도 있겠지. 정말로 테라스에 미니 풀을 설치하고 물놀이를 할 수도 있을 거야. 재미있겠지?

네 대답이 듣고 싶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도 재미있을 것 같니? 그렇게 내 것이 아닌 곳을 영원히 떠도는 이 삶이 그리 불행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삶이 여전히 유의미하다 믿을 수 있겠니.

대답을 들려줘.

나는 네 삶을 나와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 너는 네 삶을 나와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이곳에서. 얼른 자라서, 말을 배우고.

내게 서툴게, 아빠, 라고 불러줘. 대답은 뒤로 미루고…….

너를 보면 나는 항상 웃는데, 너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전히 네가 행복한지 알 수 없구나.

그런데도 너로 내가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들려줘, 언젠가는.

너는 내 품 안에서 잠에 들었지,

창문 바로 앞까지 밤이 들어찬 줄도 모르고.

방은 점점 가라앉고 있단다. 아무리 퍼내도 차오르는 어둠 속에서

너를 꼬옥 안았어. 너는 여전히 작은 태양 같고

나는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단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너를 안고 있을게.

사랑한다.

사랑해.

너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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