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외계인 / 임나경 안양예고 문창 3

1

오늘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한다. 수험서를 넣어 불룩해진 가방을 거북이처럼 등에 메고 버스를 탄다. 오늘따라 가방이 무거운 건 수험서 옆에 넣은 철학책 때문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존재면 존재고 시간이면 시간이지 철수와 영희도 아니면서 골치 아픈 두 개를 하나로 엮을 건 또 뭐란 말인가. 하긴 그래서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흥미가 일기는 했다. 9급 공무원 수험생인, 그것도 벌써 9년째의 장수생인 내가 주제넘게 웬 철학책이냐.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진실을 말할 수밖에.

 

음, 나는 사실 외계인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외롭고 축축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그보다 더 외롭고 축축한 비지구인. 외계인이 뭔 공무원시험이냐고? 솔직히 말해서 외따로 떨어진 이 행성의 삶을 향유하기란 어려운 일 아닌가. 그래서 뭐라도 하려고 집어든 것이 하필 9급 공무원 수험서였고, 원래 집어든 건 끝장을 보는 게 우리 별 외계인들 성향인 탓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외딴 섬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게 당연함에도 가끔 나는 헷갈린다. 내가 마치 지구인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나는 머나먼 지구에 떨어져버린 비지구인이면서.

공무원시험에 매번 떨어져도 나는 계속 도전한다. 도서관에 가서 수험서를 보고 또 본다. 하지만 거듭 공무원시험에 떨어지고 장수생으로 살고 있다 보니 왜 도서관에 가는지 목적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그냥 난 그곳에 간다.

지구인 부모님의 합격할 수 있다는 끊임없는 믿음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때도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비록 당신들은 지구인이고 저는 외계인이긴 하지만 꼭 합격하여 효도하겠습니다!

계속되는 불합격에도 지구인 부모님은 굴하지 않았고 나는 너무나도 비굴했다. 일부러 멀리 있는 편의점까지 걸어가 백 원 더 싼 구백 원짜리 전주비빔밥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백 원이라도 아끼는 게 나의 효도였다. 저 사람 구 급 공무원 십 수째래. 나는 더 꾸역꾸역 삼각김밥을 삼키다가 하마터면 벌컥 화를 낼 뻔했다. 어떤 놈이 그래? 십 수가 아니라 구 수야. 구수! 김밥에서 공장 기름냄새가 났다.

2

고개를 저으며 버스에 몸을 기댔다. 아침 공기 탓에 코가 아릿했다. 버스가 덜컹거렸다. 텁텁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여고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엠알아이처럼 웅웅거렸다. 야, 돈 언제 갚냐? 웅웅. 뭐? 오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웅웅. 분명 공기뿐일 텐데 우주의 암흑물질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듯 갑갑했다.

나는 강박적으로 휴대폰을 껐다 켜면서 알람을 확인했다. 가방 위로 휴대폰을 덮어놓다가 다시 뒤집어 알림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뜨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돌려 차창을 바라보던 와중 손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수신인을 확인했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진동이 연달아 다섯 번 울리길 기다렸다가 화면에 뜬 초록색 수화기를 눌렀다.

……네, 엄마.

방금 일어났더니 벌써 나갔더구나.

공부해야죠.

어제도 늦게 들어왔으면서……, 무리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엄마, 아빠 봐서라도 무리하지 않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우린 너 때문에 든든하다니까. 정말. 항상 하는 말 알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말.

활기차게 들려오는 음성에 나는 말끝을 늘여 전화를 끊을 순간을 쟀다. 오답을 말하면 의자가 사람을 날려보냈던 예능 프로그램처럼. 버스 의자가 금방이라도 퉁. 튕겨서 우주공간 너머로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나와 같은 외계인 박민규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유리창에 검지를 문질렀다. 창문에는 반투명하게 손기름이 남아있었다.

파이팅! 믿는다! 자신감을 가져! 자랑스럽다! 지구인 어머니의 상투적인 응원을 듣고 있자니 전화가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버스는 도서관을 향해 굴러가는 중이었지만 벌써 도착했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차창에 몸을 기댔다. 나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평화로운 하루를 상상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서관은 조용하니까. 조용한 곳을 상상하는 거야. 도서관에 가면, 떠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사서도 있고, 공무원시험은 멀었고, 이젠 수험서 대신 책만 읽는 외계인도 있고,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있고, 데미안도 있고, 군주론도 있고, 사회계약론도 있고. 음, 더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인생에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이 세상 아무도 열심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천하의 일론 머스크도 항상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 불은 땔감이 있어야지 탄다. 열정도 뜨거워야 하므로 땔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땔감도 없는 나는 열정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마음먹은 외계인이 되었다.

 

3

나는 어떤 행성의 누군가와 영혼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미국의 51구역에는 외계인의 시체가 있고, 나사는 달에 간 적이 없고, 영국에서 미스터리 서클이 나타났다느니 하는 음모론들이 시끄럽게 쏟아 나오던 때였다. 나는 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나를 낳아준 지구인 부모님은 그 점을 굉장히 걱정했다. 지구인 부모님?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주 오래전 나의 어머니였을 외계인 어머니의 뱃속과 지구인 어머니 뱃속의 아이 영혼이 서로 바뀌었다. 이런 현상은 우주적으로 볼 때 무척 흔한 일이어서, 심지어 엄마와 딸의 영혼이 뒤바뀌는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에도 나왔다.

홀로 <프리키 프라이데이>를 보면서 이 지구의 유일한 외계인임을 깨닫던 나는 상당히 멜랑꼴리해졌다. 뭐랄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처럼. 창문에 팔을 기대 누우며 물끄러미 달만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내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게다가 난 또래 지구인에 비해 조숙하기도 했다.

그날 밤도 별다른 바 없었다. 멜랑꼴리하게 달을 바라봤고 난 외계인인 걸까? 고민하고 있었다. 깨달음이 확신으로 이어지기까지엔 증거가 필요했다.

내가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창문을 닫던 순간이었다. 거센 바람이 방 안으로 불어닥쳤다. 순식간에 태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5평짜리 내 방은 엉망이 되었다. 경첩의 기분 나쁜 쇳소리와 함께 방문이 불안하게 덜컹거렸다. 공책과 볼펜,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준 비싼 샤프까지 허공을 날았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나름 힘쓰기에 자신이 있었기에 덜컹거리는 창문을 닫으려고 애썼다. 바람이 창문을 어찌나 세게 내리치던지 창문을 잡은 팔이 달달 떨렸다. 나는 괴성과 함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창문을 밀었고 마침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멈췄기 때문에 나는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뻐근한 이마를 문지르며 작게 욕을 뱉어내고 있을 때 주위가 고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안방에서는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저기.

적막을 깬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목소리. 가래가 끓는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음성이었다. 코골이 소리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처럼 깔려있었다.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이 불쑥 났을 뿐이다.

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아?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집에 들어온 것 아닌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넌 달에 갈 자격이 있어.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그 무언가는 내게 답을 구하는 듯 마지막 말 이후에는 적막이 흘렀다. 등 뒤로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나는 굳어버린 입을 겨우 벌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괘, 괜찮습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차가운 새벽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그제야 나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튼이 펄럭였다. 밤 하늘에 걸린 달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문은 너무나도 활짝 열려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래도 혹시 내가 지구인인 건 아닐까.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있었다.

 

4

내 인생을 바꾼 그 남자를 만나게 된 건 우연에 불과했다.

지구인들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구나.

나는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일 도서관에 가면서 매일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나와 나 사이의 약속이었다. 그래야지 하루를 보람있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에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있으니까. 공무원 시험 날짜는 아직 멀었고, 그때까진 충분히 지루했으니까.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읽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고 시계를 보니 정확히 시침이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외계인도 배꼽시계라는 개념이 있다) 나는 배고팠고, 한식은 질렸고 빵을 먹으려고 뚜레쥬르에 갔더니 한 세 개쯤 먹어야 배가 찰 것 같은 소시지 빵이 이천삼백 원이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나갔다. 솔직히 좀 울고 싶었다. 추억의 소시지 빵이라며 팔고 있는데 정작 가격은 추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으로 발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도서관은 수많은 양식의 향연이 아닌가?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비싼 빵을 먹는 대신 『카스테라』를 읽기 위해 골랐다.

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나는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외계인,

『카스테라』의 저자, 박민규는 외계인이었다. 아무런 논리도, 고민도 필요치 않았다.

박민규는 혹시라도 자신의 글을 보게 될 외계인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미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머나먼 은하의 누군가에게 전파를 보내는 지구인들처럼 아주 오랫동안. 이 전율은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고조되었기에 양장의 표지를 덮고 나서 나는 멍하니 ‘OO 출판사 한국문학 전집 026’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십 년 넘게 떨어져 있었던 자신의 자식을 한눈에 알아보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였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여자는 눈물을 쏟아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이를 끌어안았고, 나는 배를 벅벅 긁으며 역시 지구인들의 영화는 글러 먹었어, 했다. 자식을 잃고 목적없이 살아가던 여자가 단숨에 아이를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린다니. 그야 도대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박민규의 책을 조금만 더 빨리 읽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활자 위로 떨어지는 짭짤한 물방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책이 쭈글쭈글 울고 있었다.

5

그날 이후로 나는 박민규와 연락하고자 노력했다. 방법은 쉬웠다. 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 공부를 책을 읽는 행위로 바꾸었듯 이젠 그것을 박민규를 만나고자 노력하는 행위로 바꾸면 되었다. 나는 곧바로 OO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저기 박민규 작가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은데요.

실례지만 혹시 누구시죠?

같은 외계인……, 아니, 팬인데요.

수화기 너머, 여자의 기다란 신음에서 곤란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함부로 전화번호를 알려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내 질문을 막아버리려는 듯 덧붙였다.

박민규 작가님 절필하셨는데요.

……네?

나는 순간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종료된 통화와 함께 밀려났던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저, 절필……? 붉은빛만 깜빡이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새까매진 화면 너머로 먹다 남은 우유 팩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박민규는 오랜 인생 중 처음 알게 된 외계인이었다. 그를 실제로 만나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절필했다면 그가 소설로 꾸준히 보내던 신호는, 그것을 알아보게 될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박민규 작가님이 어디에 사는지 아시나요?

네?

박민규 작가님의 거주지요.

……죄송하지만 그것은 작가님의 개인정보라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전화는 출판사에서 먼저 끊었다. 나는 다시 붉은 빛만 깜빡이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휴대폰 액정에는 허망하게 입을 쩍 벌린 게 아닌 결의의 찬 얼굴이 비쳤다.

그 이후로 나는 책 읽기를 때려치운 채 온종일 열람실 앞 의자에서 핸드폰만 두드렸다. 그가 재학했던 대학교에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였으며, 동문인 척 전화를 걸었고,

안녕하세요, 저 민규랑 동문인 졸업생인데요. 아니 오랜만에 민규랑 술 좀 마시려고 연락을 하려고 했더니 핸드폰을 바꿔서 전화번호가 싹 다 날아갔지 뭐예요? 주소 있나요?

네, 혹시 전화 거신 분 성함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

당연히 실패했다.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출판사는 내 번호를 차단한 듯했다. 문학상의 주관단체들에도 전화를 돌려봤지만 역시 개인정보는 줄 수 없다는 게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모든 인터넷 서점의 구매평란에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심지어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렸다.

박민규 작가님, 저는 당신과 같은 외계인입니다. 같은 동향이라고요. 당신의 책을 모두 읽고 작가님이 저같은 외계인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간곡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간략히 말해서 이 정도지만 거의 오천 자 분량이나 되는 긴 글이었다. 그 밑에 간단하게 메일주소와 연락처를 덧붙이고 나서 나는 박민규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의 소설처럼 박민규 또한 내게 답을 줄 테니까, 라는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6

작가와 연락을 하고 전화를 주겠다는 어느 문학상의 단체들도 박민규와 친한 작가들도, 답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박민규까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도서관 디지털 열람실에서 온종일 살았다. 박민규가 댓글을 남겼길 기대하며 ‘새로고침’만 눌렀다.

동그랗게 굽이진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았다.

집에서는 물끄러미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박민규는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나는 5평짜리 방 안에 홀로 누워 화면을 켜고 끄고를 반복했다. 액정이 켜질 때마다 난 눈이 부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휴대폰을 켜고 끄고를 반복하면 할수록 벽에 붙박인 아메리카 대륙 모양의 곰팡이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액정이 깜빡하는 순간, 벽이 다가오고, 다가오고, 또 다가오고. 언젠가 벽에 찰싹 달라붙어 버리고 말 것이다.

세계는 언제까지 가까워져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지구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지구인을 붙잡고,

심지어 외계인까지 붙잡는

지구는,

지구의 외로움의 크기란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인가.

도서관에 빌려온『카스테라』를 비롯한 박민규의 소설들을 읽고 또 읽었지만 어쩐지 비좁은 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자살을 하기로 했다.

7

요즘 많이 힘드니?

나의 지구인 어머니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괜스레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반찬들을 확인했다. 잡곡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밥알 사이를 뒤적였다. 식탁 위에는 조기 두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는 조기 살을 바르더니 머리부분을 가져갔다. 락앤락에 담긴 수많은 반찬들. 세 가족이 먹는 반찬은 사실 몇 개 안 됐다. 물컵에는 온갖 약초와 이름도 모를 나무들을 넣어 만들어 붉게 물들어진 물이 담겨있었다. 텁텁하고 쓴맛이 나는 물 밑에 나무껍질들이 오래된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답답했다. 어머니는 엉덩이를 끌고 가까이 붙어 앉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생선 대가리를 발라먹고 있었다. 나는 된장에 무친 쇠비름나물을 연료를 채우려는 로봇청소기처럼 기계적으로 입에 가져다 대었다. 따뜻한 손이 내 어깨를 감쌌다.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엄마는 네가 잘 해낼 것이라고 믿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고 아버지는 두툼한 조기 살을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무언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팔을 올리면 피부에 쩍쩍 달라붙는 식탁이었다. 아버지가 입을 댄 스뎅 물컵에는 굵은 고춧가루들과 형제를 알 수 없는 찌꺼기가 붙어있었다.

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엄마.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갔다. 아까 깨작거렸던 밥알과 나물들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변기 뚜껑을 열고 고요한 변기 물을 바라보았다. 세라믹 변기에는 오줌자국이 눌러 붙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쑤셔넣었다. 손끝에 씹다 만 밥알들이 느껴졌다. 토사물이 변기 벽면에 묻는 것은 치우기 불편했으므로 나는 변기 주둥이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손가락으로 혀를 꾹 눌렀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그러다가 조기 살을 발라주시는 아버지가 떠오르고,

조기도 비싸고, 요즘은 잡곡밥도 한두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세상은 원래 그런 식이니까.

깊숙이 넣었던 손가락을 뺐다. 침이 길게 늘어지더니 물 위로 떨어졌다. 표면이 출렁였다. 화장실 타일 벽의 줄눈에는 곰팡이가 새까맣게 기어가고 있었다.

8

생각보다 자살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았다. 막상 편의점에서 커터칼을 하나 샀을 때 소독이 되어있을 것 같지 않았다. 파상풍에 걸려 죽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약국으로 향했다. 알콜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약국을 가고 있지? 녹이 슨 칼날로 손목을 긋든, 알콜솜으로 윤이 나게 닦은 칼날로 긋든 어차피 죽는다는 결과는 똑같을 텐데. 내 안일한 마음에 통탄함을 느끼곤 집으로 돌아갔다.

외계인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음, 글쎄다.

그래서 난 자살을 관뒀다. 대신 계속 생각하기로 했다. 계속 생각한다면 언젠가 할 것 같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삶까지. 난 참 철학적인 외계인인 것 같다. <존재와 시간>의 하이데거가 철학적 지구인이듯이.

외계인은 지구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지구인 부모님이든, 지구인 친구들이든 말이다. 차라리 그 외계인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같이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다.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절 데려다주세요, 지구는 너무 축축하고 외로워요, 마치 저 같아요, 하면서 애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외계인의 방문은 그날 이후 없었다. 세계는 후텁지근한 한국 날씨처럼 내게 달라붙었고 나는 더욱더 지구인들을 부러워했다.

커터칼로 자살에 실패하고 별생각이 안 들었다. (물론 실패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안 한 것에 가까웠지만) 별생각 없이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집에 있는 칼슘하고 종합 비타민 약을 많이 먹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삶은 계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호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커다란 솜사탕 같은 게 삶이라면 참 좋을 텐데 공교롭게도 아니다.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어쨌든 어렵게 받침 붙는 것들을 입에 다 넣었고 입을 닫았다. 뭐 좋은 약들도 다같이 먹으면 안 좋다고들 하지 않는가. 허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는데, 약 냄새가 너무 역했다. 그래서 전부 뱉어내고 말았다. 형형색색의 알약들이 변기통에 퐁당퐁당 빠지자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오예, 오메가쓰리는 노란색 불꽃. 눈앞이 롯데타워 불꽃놀이였다. 이 불꽃놀이의 절정은 점심 때 먹은 전주비빔밥이었다. 이번에도 자살을 실패한 나는 순조로운 자살은 마치 평화로운 트럼프 (전) 대통령 같다고 생각했다.

 

방 안에만 박힌 채로 폰을 깜빡거리며 켜고 끄기를 반복한 지 며칠이 되었을까. 실패한 자살들을 곱씹으며 나는 더 외로워지고 있었다. 지구인 부모님은 문을 두드리며 자주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것도 힘겨웠다. 가슴을 꽉 짓누르는 그 기분 때문이었다. 블랙홀이 내 몸안에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무거웠다. 차라리 침대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서 영영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블랙홀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정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꺼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액정은 환히 빛났다. 메일 제목을 작은 소리로 읽어보았다.

자네, 날 찾고 있다지.

9

박민규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파일럿 고글 같은 동글뱅이 안경을 쓴 모습을 기대했건만, 아니 하다못해 선글라스라도 말이다. 그는 차분한 검은색 직모에 안경은 쓰고 있지도 않았다. 특이한 안경을 걸치고 뽀글뽀글한 곱슬머리와 이방 수염의 박민규는 없었다. 지구인으로 위장한 지가 너무 오래돼 진짜 지구인이 되어 버린 것이나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외계인의 지조를 버리고 지구인으로 전향한 것인지도.

박민규의 집도 지나치게 평범했다. 내가 얹혀사는 부모님 집의 풍경과 비슷했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그의 집들을 노골적으로 훑어봤고 박민규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앉은뱅이 식탁을 끌고 오더니 곧이어 락앤락에 담긴 김치와 소주 두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초록 병에 담긴 소주가 출렁거렸다.

지금 쓸만한 젓가락이 없다네.

박민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게 과일 먹을 때 쓰는 포크를 건넸다. 락앤락 통을 열고 김치를 쿡 집었다. 김치에서는 군내가 났다.

내 소설을 전부 다 읽어 보았다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궁금한 게 뭔가?

박민규는 머그잔에 소주를 따르면서 내게 쭉 건넸다. 나는 머그잔을 들고 소주를 홀짝였다. 나는 고등학생 때 방으로 찾아왔던 그 외계인을 떠올렸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지구인 같았으나 묘하게 아닌 듯 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나는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엄마가 주인공을 알아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작가님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나는 컵을 만지작거렸다.

……그렇죠, 소설로 저 같은 외계인들에게 꾸준히 신호를 보내왔던 거잖아요.

술기운도 오르지 않았는데 나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잔을 비우자 그가 김치를 씹다 말고 술을 채워주었다.

사실 나는 너무 외로워. 외로워요.

나도 그랬지.

그럼 같이 살면 되겠네요.

…….

외계인들끼리 같이 살면 되잖아요.

이미 달이 존재하는데 이곳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달이요?

자네가 온 곳.

박민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외계인들은 자주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네.

그 소리는 지구에도 수많은 외계인이 살아가고 있다는 건가요?

그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인가요?

그렇지, 자신들이 달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로.

머그잔의 소주를 찰랑거리며 박민규는 그 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외계인이 많다네.

작가님은 어느 별에서 오셨는데요?

그는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정확히는 집 천장이었다) 무언가 그리운 듯한 얼굴이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나는 하다못해 목성 안에 있는 수성의 안드로메다시 카시오페이아 읍에 있는 깐따삐야 원투세븐포오리에서 왔어, 같은 영양가 없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박민규는 과일 포크로 김치를 푹 찔렀다. 노랗게 익은 김치가 그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빨에 낀 억센 배추 줄기를 혀로 계속해서 밀어냈다. 배추줄기는 나오지 않고 혀뿌리만 욱씬거릴 뿐이었다. 박민규는 조용히 김치를 씹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입안을 쑤시다가 말했다. 락앤락 통 주변에 방울방울 물기가 서렸다.

……저는 인간과 너무 달라서 외로운 것 같아요. 작가님도 자주 느끼시겠죠?

나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렸다. 기름이 채 닦이지 않았는지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취기가 오르는 것일까, 머리가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저는 죽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국가고시만큼이나 번번이 실패하더라고요. 지구인들은 좋겠다. 그런 걱정 없을 거잖아요. 외계인만큼이나 고된 삶을 살지도 않을 거잖아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박민규는 덥수룩한 수염이 나 있는 입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지구인들도 만만치 않아.

언제는 지구인들은 좋겠다면서요.

그는 컵에 고인 소주 방울을 탈탈 털어 마셨다.

그냥 같이 살아가는 척하는 거야. 그러면……,

그러면요?

정말 살아지기도 하거든.

박민규는 나의 눈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머그잔을 바라봤다.

우린 모두 우주인이니까.

어쩐지 그가 외계의 언어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10

주머니가 웅웅 울린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끄집어낸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비닐장갑 사다 둔 거 얻다 뒀니?

수화기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식탁 위에 올려 뒀는데……, 없어요?

없는데?

선반도 확인해보세요.

아, 여깄네. 고맙다.

나는 신발코로 바닥을 쿡쿡 찌른다. 며칠 전 비가 내렸는지 마른 흙을 파내니. 아래 흙은 물기를 머금었는지 진한 빛을 띠었다. 머리 위로 태양의 열기가 느껴졌다. 분명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여전히 뜨겁다.

……그나저나 언제 들어오니?

좀 늦어요.

어서 들어오렴.

알겠어요.

나는 통화가 끊긴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화면은 검게 변했다. 대충 주머니에 휴대폰을 쑤셔넣는다. 버스에 올라탄다.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달과 지구 사이에 태양계의 모든 행성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한다. 시속 백 킬로미터의 자동차가 다섯 달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 하지만 그 사이에도 만유인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간조와 만조가 생기는 것처럼. 세상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나는 버스 좌석에 몸을 기댄다. 울산 버스터미널에는 사람이 붐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란스럽게 이야기하는 말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말들.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더는 도서관을 상상하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면……,

그러게 누가 있더라.

그 외계인은 나를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을 테고, 박민규는 아마도 소설을 쓰지 않을 테지만 모두 똑같다. 모두 살아가는 척한다. 나도 살아가는 척한다.

그러니까 외계인에게 걸맞은 그런 죽음,

그런 죽음은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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